미국 유학 시절, 어느 친구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식장에서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가 신랑을 위해 손수 쓴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이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내 친구 OO에게는 자랑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일으켜, 자신을 비롯한 다섯 명의 직원과 그들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9월 초에 열린 2015 S/S 뉴욕패션위크에서 Yuna Yang 패션쇼를 앞두고 만났던 하버드 의대 교수의 아내, 유나 양(Yuna Yang, 양정윤)에 대해 내가 느끼는 자랑스러움도 마찬가지다. 유나 양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기부도 하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은퇴 후에는 경제 사정으로 공부할 기회가 제한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겠다는 확고한 꿈도 가지고 있다. 올 가을 롯데 에비뉴엘 백화점에 상품을 입고시키고 10월 말 부산 센텀시티와 제2롯데월드 등에도 입점 계획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 ‘YUNA YANG’의 디자이너 양정윤 씨로부터 그녀의 꿈, 그리고 그러한 꿈을 가지게 된 배경을 통해 현재 진행형인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 들어본다.


 

(지난 호에 이어)

의상 디자이너로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를 잡는 것 외에 또 다른 꿈이 있다고 들었어요.

네, 은퇴 이후에는 꼭 학교를 지을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 공부 외에 미술이나 음악 교육을 많이 받아왔어요. 제 주변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이었고, 경제적으로 그럴 만한 여유와 조건이 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공립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면 잘 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았죠. 저 어릴 때만 해도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도 있었고, 물로 배를 채우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자랐어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가서도 아트 디자인이 특히 한국에서는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란 걸 알았거든요. 다시 말해 교육에 있어서도 혜택 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다는 분야라는 게, 이게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시점에 미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던 중 한번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데 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이 운영하는 신발 회사와 하게 되었어요. 그 때 그 회사에서 판매 수익의 일부를 자기네가 기부하는 어느 재단에 주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그런 형태의 협업이 미국에선 아주 일반적인 거였어요. 

그래서 그 재단에서 기부하는 학교에 구경 가게 됐는데, 일정 수준 이하 저임금 가정의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였어요. 그런데 그 학교의 수준이 너무 높은 거예요. 저임금 가정의 아이들이다 보니 정말 백인은 한 명도 없고, 대부분 남미 또는 흑인 가정의 아이들이었는데, 너무나 창조적이고 교육 시스템도 한국의 여느 사립학교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나중에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리고 제가 그 때 금전적 기부만이 아니라 패션쇼와 관련한 특강도 해주고 그랬는데, 제가 앞으로 계속 잘 나가면 여러 다른 분야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 분들에게 부탁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강연을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아요. 그렇지만 또 그렇게 쉬운 일도 누군가가 실행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무슨 거창한 재단이나 학교가 아니라 정말 야학처럼 교실 한두 개에, 주말에만 한다든지 하는 그런 소박한 학교일지라도 그런 일을 하면서 보람되게 말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게 언제쯤일까요?

대략 55세쯤부터요? 일단 제가 그런 일을 할 때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위치에서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나 한계가 달라질 거고, 그리고 현재는 어떻게 보면 패션 디자이너로서 역할 모델처럼 많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데 계속 잘 돼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지속성을 가지고 꾸준히 무언가 보여주고 사회에 좋은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가정환경이나 집안배경으로 보면 꼭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요즘엔 그런 얘기도 하시더라고요. 남편이 돈 잘 버는 하버드대 교수인데 왜 일을 하느냐고요. 진부한 질문 같은데 그걸 굉장히 많이 물어보세요. 또 사업을 하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일이라는 건 이런 것 같아요. 제가 가정주부를 저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들도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또 어느 순간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내가 가진 꿈이 있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하는 것 자체가 나중에 자식을 키울 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요. 

사실 예술을 약간 취미 생활처럼, 부잣집 딸들이 결혼하기 전에 시집을 잘 가기 위한 단계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것도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뉴욕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일단 예술 쪽 지원하는 학생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마음가짐 자체는 조금이라도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이 이 길로 갔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그래서 제가 교육에 더 집착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정말 기회가 없어서 못 했지만, 오히려 이 아이가 하면 평생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은 그런 아이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현재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기부하는 게 있나요?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면 항상 하죠. 개인적으로도 하려고 노력하고요. 돈 많은 집에 태어나면 여유가 있는 만큼 더 도전적이어야 되는 거 아닐까요?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더 많이 무언가를 해야 하고 더욱 기여를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여러 가지 좋은 기회를 남보다 더 많이 가졌던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부모가 기업체를 만들었어도 자녀에게는 주식만 주고 경영은 다른 사람이 하잖아요. 그런 시스템도 필요한 것 같고,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개척하는 마음가짐, 의지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학교를 짓겠다는 꿈을 포함해 의상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고 싶다 이런 소명을 어떻게 찾았어요?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맨 처음 시작은 밀라노에 갔을 때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자신이 30여 년간 일하던 발렌티노의 작업실로 초대하면서, 단순히 패션이라고만 생각했던 의상 디자인이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입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봐오지 못한 무언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사명감도 생기더라고요. 제가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션은 산업이잖아요. 제가 이 옷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더라고요. 나의 소질, 남이 갖지 못한 재능으로 바느질 하시는 아주머니, 패턴 하시는 분, 그리고 바이어, 백화점 MD, 백화점 판매 직원, 그렇게 제 옷을 팔아서 그 분들의 삶에 경제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벅차요. 그게 제조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마인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부심과 책임감.

사업하는 분들은 월급날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던데….

물론 월급날이 싫을 때도 있죠. 적자가 났을 때는. 하지만 굉장히 뿌듯해요. 나의 재능으로 이렇게 가치를 만들어냈구나, 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구나…. 저는 직원들에게 돈을 줄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 기저에는 여러 분들에 대한 고마움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제가 아무 것도 없을 때부터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기자 분들이나 바이어 분들, 그런 분들을 떠올리면 그 분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는 거잖아요. 거기에 보답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고. 그 책임감을 이겨내는 것도 저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얼마 전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 상품을 입고시켰다고 들었어요. 국내 백화점 입점 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네, 아마 10월 20일 전후로 제2롯데월드 또는 부산 센텀시티에서 오프닝 행사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제2롯데월드 개장 계획에 따라 좀 유동적이긴 한데, 늦어도 11월 초까지는 행사들이 진행될 거예요. 올해 초 갤러리아 백화점에 런칭할 때도 맨 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그냥 갤러리아에 입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찾아가서 제 비전을 이야기했어요. 한국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우리 옷을 전시 형식으로 다시 말해 갤러리를 백화점 안으로 끌어들이는 콘셉트로 고객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더니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래서 잘 진행이 됐는데 에비뉴엘이나 부산 센텀시티도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될 거 같아요. 고객 분들이 유나 양 브랜드 역사도 아실 수 있고. 공간이 좀 협소하다는 게 도전이 되긴 하지만, 아무튼 조형물이 롯데 본점 에비뉴엘부터 시작해서 제2 롯데월드와 부산 센텀시티까지 계속해서 이동하게 될 거에요.

글로벌 성장 계획은 어떠세요?

뉴욕패션위크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까 타이완 쪽에 좀 더 집중을 해서 내년 상반기에는 홍콩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어요. 타이완은 사실 차후 중국시장을 뚫고 들어가 정착하기 위한 테스트 마켓으로 보고 있는데, 일단은 본토에 들어가기 전에 홍콩부터 들어가려고요. 타이완과 홍콩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패션 비즈니스도 시장 규모가 크고 특히 고가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들어가기가 비교적 쉽거든요.

행운을 빌어요.

고맙습니다. 또 좋은 소식 전할게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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