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Attitude

민희식 크리에이티브워크 대표 / 에스콰이어 前 편집장 

예로부터 우리 조상만큼 모자를 사랑한 민족도 없다. 오죽하면 1892년 프랑스 <뚜르 드 몽드>지는 ‘코리아는 모자의 왕국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모자를 지닌 나라는 본 적이 없다’고 기술했을 정도다. 이는 단발령이 내려지고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다양한 형태의 전통 모자를 쓰고 다녔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외출할 때는 물론 집안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도 의관(衣冠)을 정제해야 하는 것은 선비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복에 이어 갓마저도 자기네 나라에서 유래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고 있어 이젠 이를 일일이 반박하기도 입이 아플 정도다. 패랭이는 갓의 기원이 되는 초립(草笠)의 일종으로 신라시대 때부터 문헌에 등장한다. 이것이 고려를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형태를 발전시켜왔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신진사대부들은 검게 물들인 패랭이 형태의 초립을 착용하였으나 조선 중기로 접어들면서 지금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실처럼 가늘게 쪼갠 대오리에 먹칠과 옻칠을 한 흑립(黑笠)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시대 내내 주로 양반과 중인계급에게만 허락되었던 갓은 1895년 갑오경장 이후 상민계급에도 허용되면서 조선은 그야말로 갓의 왕국답게 반상을 가릴 것 없이 성인 남자들은 거의 갓을 쓰고 다녔다. 조선시대에는 갓 외에도 실로 다양한 모자가 존재했다. 사모(紗帽)와 전립(戰笠)은 문무 벼슬아치들의 상징인 감투의 역할을 했고, 양반들은 집에 머물러 있을 때는 정자관(程子冠), 탕건(宕巾)과 같은 건(巾)을 착용하였으며 신분이 낮은 계급은 직업에 따라 패랭이, 벙거지 또는 삿갓을 썼다.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갓은 2019년 느닷없이 아마존닷컴에서 인기 아이템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바로 조선 좀비로 상징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흥행 덕분이다. 아마존닷컴은 갓을 핼러윈 데이나 코스프레 아이템으로 홍보하며 기대 이상의 특수를 누렸다. 갓이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킹덤>을 꼭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팬시한 갓’을 꼽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생경한 조선의 갓에서 에스닉한 멋을 느꼈던 모양이다.
서구문물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던 20세기 초, 왕조시대가 저물면서면서 서양복식과 함께 들어온 페도라(중절모)는 갓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후 페도라는 두루마기나 슈트에 모두 잘 어울리는 모자로서 1960년대까지 남자들의 패션을 주도했다.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모던보이로 통하던 슈트는 회사원들의 일상복으로 대중화되면서 페도라 역시 유행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 애용되는 모자는 스포츠 레저용으로 야구모자, 비니, 헌팅캡, 스냅백, 베레모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시대에 밀려 갓은 일상에서 박물관으로 밀려났지만 모자는 여전히 멋쟁이들의 필수 아이템인 것만은 분명하다. 헤어스타일이 인물의 반이듯, 모자 역시 패션을 완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CEO& Marc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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