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승부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1년 신축년 새해 벽두부터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한 정의선 회장은 최근 사재 2400억원을 출연해 회장 취임 후 첫 번째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정의선 회장은 12월 11일 ‘로봇개’로 유명한, 미국의 세계적인 로봇 제조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결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이 회사 지분의 80%를 8억 8000만 달러(약 95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현대차가 30%, 현대모비스가 20%, 현대글로비스가 10%씩 참여하고 정 회장도 사재 2400억원을 투자해 20%를 인수한다. 정 회장이 사재를 털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투자한 건 이례적이다.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시키려는 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 회장은 특히 미래 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로봇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해 왔다. 정 회장은 2019년 10월 임직원과 타운홀 미팅에서 “그룹의 미래는 자동차(50%)·개인항공(30%)·로보틱스(20%)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92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분사해 설립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폿', 2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 등 다양하고 혁신적인 로봇 개발로 주목받아왔다. 이미 로봇 운영에 필수적인 자율주행(보행)·인지·제어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2013년 구글에 인수된 후 2017년 다시 소프트뱅크로 넘어갔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과 연계해 로봇 시장 진입부터 스마트 물류 솔루션까지 사업 영역 확장을 기대하고 있다. 또 제조업 현장의 자동화 등 로봇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밸류 체인 구축은 물론 모빌리티의 마지막 단계인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세대 교체, ‘정의선 호(號)’ 출범
정의선 회장은 12월 15일 취임 후 첫 임원 인사를 통해 전격적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현대제철 김용환 부회장, 현대건설 정진행 부회장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젊은 인재들을 대거 발탁됐다. 사업 성과와 역량이 검증된 리더를 주요 그룹사의 신임 대표이사로 전진배치해, 각 그룹사의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했다.
신임 사장으로는 현대자동차 장재훈 사장, 현대모비스 조성환 사장, 현대건설 윤영준 사장, 현대위아 정재욱 사장을 발탁했다. 신규 임원 승진자 가운데 약 30%가 미래차 관련 신사업 및 신기술, 연구개발(R&D) 부문으로 채워졌다. 성과와 잠재력을 인정받은 40대 젊은 인재와 여성임원 5명의 승진 인사도 눈에 띄었다.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모빌리티), 자율주행, 수소연료전지, 로보틱스 등 분야에서 미래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인사의 의미는 '세대교체'와 '능력중심'이다. 이번 인사는 신사업 육성 뿐 아니라 정몽구 명예회장 시대를 넘어 '정의선호'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렸다는 평가다.

미래 비전, ‘새로운 2025’ 전략
정의선 회장이 그리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청사진은 2020년 12월 10일 발표한 '새로운 2025 전략'에 담겨 있다. 기존 스마트 모빌리티 디바이스·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의 2대 사업구조에 수소연료전지 기반 사업인 수소 솔루션을 새롭게 추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각국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 확산으로 화석에너지에서 전기에너지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수소 관련 투자 확대로 수소 경제가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정 회장은 단순히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타 완성차 업체와 제휴, 판매하는 것을 넘어 선박, 기차, UAM 등 전 수송영역에서 기존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핵심으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브랜드 ‘HTWO’를 선보였다. HTWO는 수소를 뜻하는 분자식이자 수소(Hydrogen)와 인류(Humanity)라는 수소연료전지 사업의 두 개의 큰 축을 표현한 것으로 이를 통해 단순한 에너지 차원을 넘어 인류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HTWO 브랜드 런칭을 계기로 국내, 유럽, 미국, 중국 등 4대 거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선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 70만 기의 수소연료전지를 시장에 판매한다는 목표다. 2022년에는 현재 양산차에 적용 중인 레벨 2 수준의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기능을 발전시켜,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선보인다.
특히 운전자의 조작 없이 차량이 자동으로 발렛파킹을 하고 스스로 돌아오는 원격 발렛 기능도 2024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 및 실증사업을 통해 레벨 4, 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 정의에 따라 총 6단계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3단계 조건부 자율주행, 4단계 고도 자율주행, 5단계 완전 자율주행 등으로 구분된다.
정의선 회장은 이와 함께 UAM 생태계 구축 본격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서 고객에게 혁신적 이동 경험을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UAM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목표다. 2026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화물용 UAS(무인 항공 시스템)를 시장에 최초로 선보이고, 2028년에는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2030년대에는 인접한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지역 항공 모빌리티 제품을 출시한다.
 


수평적 리더십
정의선 회장은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부친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주도해왔다. 2019년 3월에는 그룹의 간판 기업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가 됐고, 2020년 3월에는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올라 명실상부한 그룹 리더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수행한 2년 전부터 정 회장은 현대차 기업문화를 완전히 바꿔 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회장은 그동안 보수적인 조직 문화 대신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소통, 자율, 책임을 중시하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확산시키고 일하는 방식에서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시절인 2019년 신년사에서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기존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게임의 룰’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 만큼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9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칼라일 그룹 초청 단독대담에서는“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리더십은 강력한 리더십, 즉 직원들을 독려하고 전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들과 같이 논의하고,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려고 한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는 스타트업처럼 더 많이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9년 10월 서울 양재동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보고하는 문화를 예전부터 싫어해서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과격하게 변하면 피로감이 발생하지만 필요하면 변화를 해야 한다. 지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앞으로 변화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 회장은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할 만큼 빠르고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확산시키고 일하는 방식에서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근무복장 자율화. 현대차는 2019년 3월부터 사내에 완전 자율복장을 도입했다. 구두와 정장 차림에 얽매여 있던 임원들이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하고, 30대 직원들이 반바지를 입고 업무를 보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정 회장은 대기업 중 처음으로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기존에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5단계 직급을 1~2개로 통합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연말 정기 임원인사를 연중 수시 인사로 바꾸는 등 조직문화 개편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 회장은 서울 청운동 할아버지(정주영 창업주) 자택에서 현대가의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매일 오전 5시 가족과 식사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기본 예절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꼽는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에게도 엄격한 훈육을 받았다, 2018년 수석 부회장에 오른 뒤에도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 1층 정문과 로비를 통해 출근하지 않았다. “1층은 아버지가 다니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은 지하 주차장 통로를 이용했다고 한다.

검증된 경영능력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한 이후 구매, 영업, 기획 부문 등을 두루 거치며 가시적인 경영성과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위기 때마다 아들에게 중책을 맡겨 경영 능력을 테스트했고, 정 회장은 혁신적인 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특히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 재직 시절 '디자인 경영'을 도입해 적자를 면치 못했던 회사 실적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기아차는 SUV 시장 위축에다 환율 하락까지 겹쳐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었다. 오너 3세가 ‘경력 관리’에 실패하면, 나중에 승계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에 일부 임원은 당시 정의선 사장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 회장은 당시 임원 회의에서 “절대 도망가지 않겠다. 한번 도망가면 다음에 또 그렇게 된다”며 배수진을 쳤다고 한다. 그는 이후 피터 슈라이어 아우디 수석 디자이너를 직접 찾아가 영입, 기아차를 ‘디자인 경영’으로 살려냈다. 2009년 현대차 부회장을 맡았을 때에도 ‘금융 위기’의 파고를 현명하게 이겨냈다. 미국 시장을 발로 뛰던 정 회장은 ‘구매 후 1년 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파격 보증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이때 현대차는 해외시장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2010년 최초로 ‘현대·기아차 세계 5위’를 달성했다.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도 진두지휘했다. 제네시스 론칭은 지난 1967년 창립 이래 대중차 브랜드로 성장한 현대차가 고급차 시장에 도전한 것이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정 회장은 브랜드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 인사 영입과 조직 개편까지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했다. 2021년 소띠 해, 미래를 향해 달리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ditor 박응식  Photographer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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